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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이방인들을 위한 예수 그리스도의 일꾼이되게 하시어 하나님의 복음을 수행하게 하심

 

1. 그리스도 예수를 따라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함(1-6)

 

2. 조상들에게 주신 약속들을 확고히 하시고 이방인으로 그 자비하심을 인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하심(7-13)

 

3. 이방인들을 위한 예수 그리스도의 일꾼이되게 하시어 하나님의 복음을 수행하게 하심(14-21)

 

4. 바울의 로마 방문 계획과 유대인들을 향한 이방인들의 구제(22-29)

 

5. 로마교회 성도들에게 기도를 부탁하는 바울(30-33)

 

 

1. 그리스도 예수를 따라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함(1-6)

 

 

1-2절 믿음이 강한자가 교회의 화평을 유지하는데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보여지나 사람을 기쁘게 하는 것이 그리스도인 생활의 원리는 아니다(참고 갈1:10) 곧 강한 자들은 연약한 자에게 거침의 기회가 되며, 그들 가운데 근심을 불어 넣고, 또 14:15절에서 반영하고 있는 바와 같이 그런 의미에서 불쾌감을 넣어 주는 결과가 되리 만큼 강한 자 자신의 자유를 함부로 사용해서는 안된다고 한 것입니다.

3절 앞의 두 구절에서 말하고 있는 의무를 보다 강력하게 돋보이게 하기 위하여 우월적인 모본을 들어서 그리스도의 성취사업의 예를 들음으로써 우리로 하여금 더욱 깊이 생각게 한다 이 말씀은 시69:9절에서의 인용문인데 그리스도의 특수한 면을 드러내기 위한 것이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행하신 것과 강한 자들이 행하도록 촉구받고 있는 것 사이에는 분명히 심각한 불일치가 있다. 그리스도는 하나님에게 대항하는 사람들의 모든 적의를 짊어질 만큼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아니하셨으며”, 또 그는 하나님의 명예를 열심히 위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런 수치도 감수하시고 어떠한 공격에도 두려워하지 아니하셨다. 그렇거늘 강한 자라고 하는 우리들이 하나님의 성도들에게 손해를 끼치고 그리스도의 몸의 건덕상에도 손실을 끼쳐 가면서까지 먹고 마시는 문제로 우리 자신을 기쁘게 해야한다고 고집할 수 없다. 이런 호소의 위력을 증진시키는 것은 그리스도의 입장과 우리의 입장간에 놓여 있는 완전한 대조이다.

4절 “무엇이든지 전에 기록한 것은 우리의 교훈을 위하여 기록된 것이니”라는 말은 구약은 이 마지막 날을 당한 우리에게 끝까지 우리가 성취해 내야 하는데 필요한 교훈을 제시하자는 목적이 있으며, 또 그런 목적을 촉진하기 위해 기록된 것이라고 본다 뿐만 아니라 성경은 그것을 읽는 사람들로 하여금 인내하게 하고 안위를 얻게하며 또 하나님 나라에 대한 커다란 소망을 갖게 한다

5절 “인내와 위로의 하나님”이란 4절에 있는 인내와 위로라는 말을 가리키며, 하나님이 이런 것들의 근원이요 창시자라는 것을 의미한다(참고, 고후1:3) “그리스도의 예수를 따라서”라는 것은 그리스도의 뜻과 일치한다는 의미가 될 수 있다.

6절 “한 생각과 한 입”은 내적 외적으로 하나님을 영광스럽게 하는 일이 반드시 일어날 연합을 표현해 준다.

 

2. 조상들에게 주신 약속들을 확고히 하시고 이방인으로 그 자비하심을 인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하심(7-13)

 

7절 5,6절에서 연약한 자와 강한 자가 다 나타났듯이 여기서도 그리하다. 14:1절에서 동일한 권고가 연약한 자와 관련해서 강한 자에게 내렸으나, 지금은 두 부류의 사람들이 신뢰와 사랑가운데 피차 포용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이것의 필연성은 그리스도께서 하신 일에 의해 지지된다(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받아 주신 사실)

8-9상반절 “할례의 일꾼”이 되셨다는 말은 이스라엘 백성들 가운데서 태어나셨고 또 친히 그들과 같이 할례를 받음으로써 하나님과 언약을 맺은 계약 백성 중의 하나가 되셨다는 뜻이다 이와 같이 그리스도께서 할례의 일꾼이 되신 목적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 생각할 수 있는데 첫째는, 이스라엘의 조상들에게 주신 하나님의 약속을 성실히 이행한다는 견지에서 ‘하나님의 진실하심’을 확증하기 위한 것이었다. 즉 아브라함에게 한 자손을 주어 그 자손 가운데서 결국은 구세주이신 그리스도가 나오게 하리라는 하나님의 약속을 견고케 하신 것이다. 둘째는, 유대인들 뿐만 아니라 이방인들도 하나님의 백성이 되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함이었다.

9절한반절-12절 9절 하반절의 인용문은 사무엘하22:50;시편18:49절을 인용하고 10절은 신명기 32:43절, 11절은 시117:1절, 12절은 이사야 11:10절에서 인용한 것인데, 약간의 생략을 했을뿐이다. 사도가 인용한 이런 형태 속의 모든 인용에 공통적인 것은 이방인들에 대한 언급이 있다는 점이다. 이 모든 인용문이 인용된 것은 그리스도께서 할례의 한 수종자가 되신 계획 중의 한 가지는 이방인의 구원이었다는 제안을 지지하기 위함이었다.

13절 이 구절은 본 서신의 이 부분을 종결짓는 것으로 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 12절인 마지막 인용된 말과 일치하게 소망에 강조를 두고 있음이 확실하다 곧 “성령의 능력으로 소망이 넘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는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께 대한 간접적인 기도로써 기원과 권고를 합친 것이다. “소망의 하나님”이란 칭호는 5절에 있는 “평강의 하나님”과 동일한 형태를 따른 것으로 해석해야 한다. 우리 안에 소망을 생기게 하시니 하나님은 소망의 하나님이시다.

 

3. 이방인들을 위한 예수 그리스도의 일꾼이되게 하시어 하나님의 복음을 수행하게 하심(14-21)

 

14절 이 시점에서부터 본 로마서의 결론 부분이 시작된다. 여기서 하고 있는 일은 격려, 설명, 인사, 그리고 최후의 송영입니다. 앞 부분에서 일찍이 가혹한 책망, 수정, 경고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사도는 그런 모습을 로마교회의 상태로 아주 저급하게 보지 않았습니다. 지금은 보다 강한 어조로 그들의 미덕을 인정해 주고 있습니다. 친교의 유대 관계는 “내 형제들아”라는 표현속에 나타나 있습니다. 그리고 로마의 신자들은 “선함이 가득하고” “모든 지식이 찬”것으로 여겼다. 여기서 “지식”은 기독교 신앙에 대한 이해이며 특별히 다음 문에서 반영되고 있는 권하는 능력과 관계된 지식이다. 그러기에 거기에 있는 신자들은 스스로 다른 사람을 권하고 교훈할 수 있다.

15절 사도는 14절의 말씀을 던지 이후 그가 편지를 쓰게 되었던 담대성을 이제 설명하려 한다. 그는 “담대히”라 말하지 아니하고 “아주 담대히”라고 말하면서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주신 오직 그 은혜로 인함인 것이다. 이것이 바울의 특징이다. 사도가 자기의 사역을 행해내는 것은 거룩한 사명을 수행하는 과정에 있는 것이며, 또 그 사명에 속하는 은혜를 더해 주심으로 인한 것이다.

 

16절 15절에서 말한 바를 구체적으로 설명해주고 있다. 사도가 이방인을 위한 그리스도의 일군이 되기 위해 은혜가 그에게 주어진 것이다. 이방인을 위하여 복음을 증거하는 데 일생을 헌신한 바울은 본 절에서 그 자신이 “예수 그리스도”의 종임을 이야기하고 있는데 말씀 사역을 위해서 자신을 택하신 분이 “그리스도”임을 암시한다. 그 다음 바울은 자신이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하고 있다고 말한다 이는 복음이란 결코 사람을 위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계시하신 복음을 말한다. 또한 이방인이 하나님께 드려질 수 있는 것은 그들을 하나님의 백성으로 성별하시는 ‘성령’의 역사에 기인한다고 말하고 있다.

 

17절 여기서 나타난 자랑의 근거는 15절 하반절과 16절을 기리키는 “그러므로”라는 말 속에 함축되어 있다. 그렇지만 그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라는 말을 유의해서 부가하고 있다. 주님 안에 있는 자랑이 아니고는 모두 제거되어야 할 자랑이다. 그리고 사도는 하나나의 진전된 자랑의 성격을 말하고 있다. 그의 자랑은 “하나님의 속한 일에 대하여”서다

 

18절 바울이 17절에서 말하는 대로 자기 자신인 도구를 통해 되어진 복음의 승리에 대해 생각하고 있다는 것은 18절에 의해 나타나는 바입니다. 왜냐하면 여기서 사도가 단언하고 있는 것은 그리스도께서 자기를 통해서 이룩하신 일에 대해서만 자기가 담대하게 말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가 여기서 “그리스도를 통해서 내가 행한 일”을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사도를 통한 그리스도의 행위”다. 이 행위는 “말과 일” 양자에 있는 것이다. 그가 여기서 자랑한다고 감히 담대하게 말한 것은 다른 사람을 통해서라기 보다는 사도 자기 자신을 통해서 되어진 일들만을 제한하고 있는 것이다.

 

19절-21 바울을 통해 그리스도께서 행하신 일을 보다 구체적으로 밝힌 것이다. 19절에 “예루살렘으로부터”라고 말한 것은 예루살렘으로부터 복음이 퍼져 나갔기 때문에 이렇게 표현한 것이다. “나는 그리스도의 이름이 불려지지 아니한 곳에서만 복음을 전파하려고 노력했다”는 말을 잘 이해해야 된다. 단순히 그리스도의 이름이 알려지지 아니함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고 그리스도를 인정하지 아니함을 의미한다.

 

4. 바울의 로마 방문 계획과 유대인들을 향한 이방인들의 구제

22-24절 22절에서는 바울이 1:13절에서말한 것과 같이 여러번 방해를 받음을 이야기하면서 방해를 받게 된 이유는 가까운 지역에서 자기의 사역을 성취해야 할 필요성에 의해 방해를 받은 것이다. 그는 지금까지 수고했던 지역에서 복음을 충분하게 전하기까지는 떠날 수가 없었다. “이제는”(23절) 입장이 달라진 것이다. 이젠 그가 더 이상 예루살렘에서 일루리쿰에 이르기까지의 지역에서 이와 같은 종류의 활동을 할 장소가 없어졌던 것이다. 그리고 24절 하반절에서 그는 로마를 방문하겠다는 계획을 짜고 있음이 나온다. 그것은 그가 고린도나 에베소에서 성취했던 것과 같은 사도의 사역과 같은 형태의 일을 행하자는 것은 아지고 “이는 지나가는 길에 너희를 보고자 한다”는 것이다. 그것도 스페인으로 가는 도중이다. 그가 계획한 것은 지나가는 길에 방문하는 것이다.

 

25-26 지금은 그의 로마여행이 지연된 이유와 그가 예루살렘을 향해 떠나는 목적이 무엇인가가 설명되고 있다. 지금 사도는 그곳에 자비의 사역을 지니고 가고 있는 중이다 그러기에 “내가 성도를 섬기는 일로 예루살렘에 가노라”고 말한다. 이 헌금은 마케도니아와 아카야 성도들이 보낸 헌금인데 “기쁘게 얼마를 동정하였음이라”는 말속에 자원적인 성질이 나타나 있다.

 

27절 이 구절은 26절과 동일한 말로 시작되며, 헌금의 자원적 특성을 다시 말해준다. 여기서 빚진자라는 것은 은혜를 입은 자에 대해 느끼는 빚을 의미한다. 이방인들은 유대인과 예루살렘으로부터 일어난 신령한 것에 동참자가 되었고 이런 신령한 것들은 최고의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28-29절 바울은 다시 스페인으로 가는 길에 로마를 방문하겠다는 계획을 말하고 있고 여기에서의 열매는 예루살렘에서 생겨난 “신령한 것”에서 일어난 열매로 보는 것이 좋을 듯 싶습니다. 그래서 예루살렘에 있는 성도들에게 전달된 헌금이 복음에서 우러나온 열매임을 그곳에 있는 교회들에게 인쳐 주는 것이며, 또 이런 헌금을 하게 만들었던 사랑의 증거가 될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5. 로마 교회 성도들에게 기도를 부탁하는 바울(30-33)

로마 신자들에 대해서 내린 평가와(14절), 또 사도가 그들을 방문하여 그들로부터 기대하고 있는 새 힘을 얻겠다는 사실이 사도를 위해 그들의 기도를 부탁하는 근거로 추가된 것이다. 성도들에게 기도를 부탁하는 것은 바울의 특징이기도 하다. 그래서 그는 로마 신자들에게 호소하는 것이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라는 말은 그가 그의 탄원의 매개체 역할을 하며 그는 그리스도의 중보 없이는 그의 형제들에게 탄원하지 아니한다. 그리고 기도의 특징은 그의 섬기는 일이 성도들에게 발음직하게 되기 위한 것이다. 여기서 바울은 로마 교회 성도들에게 세 가지 내용의 기도를 부탁했다. 첫째는 그가 예루살렘에 도착할 때 그를 박해하는 유대인들에게 해를 당하지 않도록 기도하는 것이다(31) 둘째는 예루살렘 교회의 유대인 성도들이 그들 위해 마련한 이방 교회의 구제 헌금을 기꺼이 받아들이도록 기도하라는 것이고(32절)이고 셋째는 바울이 기쁨으로 로마 교회를 방문하여 그곳 성도들과 영적인 교제를 나눌 수 있도록 기도하라는 부탁인데 바울은 이렇게 기도하는 것이 하나님의 주권적인 의지에 따르는 일임을 강조한다.

그리고 이어서 33절에 하나님은 펑강의 창시자이시기 때문에 평강의 하나님으로 호칭된다. 평강의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해 주실 것을 바라는 기도 가운데에는 평강의 하나님의 임재에 의해 보증되는 모든 축복이 거기 포함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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