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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요일4:13-21

(주제)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자기 형제자매도 사랑해야 한다는 이 계명을 우리는 주님에게서 받았습니다.

 

1.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자기 영을 나누어 주심으로 하나님이 우리에게 베푸시는 사랑을 알았고, 믿었습니다. (13-16절)

2. 사랑이 우리에게서 완성되었다는 사실은 심판 날에 담대함을 가지게 합니다. (17-18절)

3.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자기 형제자매도 사랑해야한다는 이 계명을 우리는 주님에게서 받았습니다. (19-21절)

 

 

1.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자기 영을 나누어 주심으로 하나님이 우리에게 베푸시는 사랑을 알았고, 믿었습니다. (13-16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자기 영을 나누어주셨다고 하였는데, 여기 영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도에게 약속하신 성령을 뜻하는 것으로 생각됩니다.

 

*참고

[요 14:26] 그러나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께서,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쳐 주시고, 또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실 것이다.

[행 1:8]그러나 성령이 너희에게 내리시면, 너희는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에서, 그리고 마침내 땅 끝에까지, 나의 증인이 될 것이다."

 

 이것으로 우리가 하나님께 속해있고, 또 하나님께서 성전 된 우리 안에 계시며 함께 해주심을 우리는 안다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아버지께서 아들을 세상의 구주로 보내신 것을 보았고, 또 그것을 증언한다고 하였습니다. 여기서의 보았다는 표현은 눈으로 직접 보았다는 표현보다 가까운 문맥인 요일3:6에서와 같은 맥락에서 이해해야할 것입니다.

 누구든지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로 시인하면, 하나님이 그 사람 안에 계시고, 그 사람은 하나님 안에 있다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누구든지’는 그냥 막연한 ‘아무나’의 개념이 아니라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이스라엘 사람이나 이방인이나’의 개념으로 보아야 합니다. 개인 구원이야기가 아니라 하나님의 거대한 구원 역사의 발전 진행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구약시대에는 오직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만 함께 해주셨으며, 그들만이 하나님께 속한 백성이었습니다. 그러나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셔서 이방인에게 막힌 그 담을 헐어버리셨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누구든지(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여기서 헬라인은 그리스인을 뜻하는데 이방인의 대명사격으로 쓰이는 말입니다.)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로 시인하면, 구약시대 이스라엘 백성에게 그러셨던 것과 같이, 그리고 그 때의 그 관계보다 더 발전적으로 함께 해 주시는 것입니다. 여기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로 시인한다 할 때에도 단순히 문자 그대로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임을 시인하는 것을 뜻하는 것으로 생각하면, 예수님을 보며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고백했던 귀신의 예와 모순이 됩니다. 단순히 존재론적인 시인이 아니라 예수님을 아들 하나님으로 믿고 고백하고, 그가 하신 일들의 핵심 즉, 이제는 죄에 대하여는 죽고 의에 대하여는 살리심을 입으셨으며, 그 안에서 우리 성도들도 죄에 대하여는 죽고 의에 대하여는 살리심을 입었다는 사실을 믿고 시인하며, 따라 살아가는.... 더욱 풍성하고 포괄적인 내용을 함의하고 있는 것입니다. 구약시대 이스라엘 백성들과 비교했을 때 더욱 발전적인 관계라는 말은 구약시대에는 하나님께서 사람의 손으로 지은 성전에 계셨으며, 아무나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해서 거기 계신 하나님께 직접 나아갈 수가 없었습니다. 하나님께 직접 나아갈 수 있는 사람은 대제사장 뿐이었으며, 그것도 일 년에 한번(일차) 뿐이었습니다. 그러나 신약시대에는 더 이상 대제사장과 같은 중보자가 아닌 영원한 중보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심으로 우리는 주의 이름으로 나아가면, 하나님과 직접 대면할 수 있도록 허락하셨습니다. 얼굴을 눈으로 뵙는다는 것이 아니라 직접 하나님께 고백하고 하나님께서도 직접 말씀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이제 하나님께서는 구약시대 사람의 손으로 지은 성전에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으로 그리고 그 분을 믿는 성도들 안으로 이사하셨습니다.(이해를 돕기 위한 표현입니다.) 이제 그런 의미에서의 구약시대 성전 개념은 폐지되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베푸시는 사랑을 알았고, 또 믿었다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하나님께서 베푸신 사랑의 내용은 바로 위의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베풀어 주신 사랑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사랑 안에 있는 사람은 하나님 안에 있고 하나님도 그 사람 안에 계신다고 하였습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전 시간에 ‘하나님은 사랑이시다’와 ‘사랑은 하나님이시다’를 비교해 봄으로서 주의할 점을 짚었었습니다. 하나님 없는 사랑은 사랑이 아닌 것입니다.

 

 

2. 사랑이 우리에게서 완성되었다는 사실은 심판 날에 담대함을 가지게 합니다. (17-18절)

 

 사랑이 우리에게서 완성되었다는 사실은 곧 우리로 하여금 심판 날에 두려움이 아닌 담대함을 가지게 하려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베푸신 사랑이 우리 성도들에게서 완성됩니다. 더 이상 민족에 상관없이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백성이 됨으로써, 그리고 그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은 자들답게 서로 사랑함으로 하나님의 사랑이 완성되는 것입니다. 신약시대 성도들에게 주신 큰 두 계명을 묵상하면 도움이 됩니다.

 

*참고

마22:37-40

37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네 마음을 다하고 네 목숨을 다하고, 네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여라' 하셨으니,

38 이것이 가장 중요하고, 으뜸 가는 계명이다.

39 둘째 계명도 이것과 같은데 '네 이웃을 네 몸 같이 사랑하여라' 한 것이다.

40 이 두 계명에 모든 율법과 예언자들의 본 뜻이 달려 있다."

 

 우리가 이렇게 심판 날에 대해 담대한 것은 우리가 그리스도께서 사신 대로 또한 우리도 이 세상에서 그렇게 살기 때문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냥 존재론적으로 주님을 알면, 구원받는다고 막연히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경각심을 일깨워줄 수 있는 말씀입니다. 성도가 심판날에 담대함을 얻는 것은 그리스도께서 사신 대로 즉, 죄에 대하여는 죽고 의에 대하여는 살리심을 입어 오직 하나님을 위하여 사는 삶으로 얻게 되는 것입니다. 로마서를 참고하시면 도움이 됩니다.

 

*참고

로마서 6:1-14

1 그러면 우리가 무엇이라고 말을 해야 하겠습니까? 은혜를 더하게 하려고, 여전히 죄 가운데 머물러 있어야 하겠습니까?

2 그럴 수 없습니다. 우리는 죄에는 죽은 사람인데, 어떻게 죄 가운데서 그대로 살 수 있겠습니까?

3 여러분은, 그리스도 예수와 연합하는 세례를 받은 우리 모두가, 그분의 죽으심과 연합하는 세례를 받았다는 것을 알지 못합니까?

4 그러므로 우리는 그분의 죽으심과 연합하는 세례를 받음으로써, 그분과 함께 묻혔습니다. 이것은, 그리스도께서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아버지의 영광으로 살리심을 받은 것과 같이, 우리도 새로운 생명 가운데서 살아가게 하려는 것입니다.

5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같은 죽음으로 그와 연합하는 사람이 되었으면, 또한 분명히, 그의 부활하심과 같은 부활로 그와 연합하는 사람이 될 것입니다.

6 우리는, 우리의 옛사람이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달려서 죽은 것이, 죄의 몸을 멸하여서, 우리가 다시는 죄의 노예가 되지 않게 하려는 것임을 압니다.

7 죽은 사람은 이미 죄의 세력에서 해방되었습니다.

8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으면, 그와 함께 우리도 또한 살아날 것임을 믿습니다.

9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아나셔서, 다시는 죽지 않으시며, 다시는 죽음이 그를 지배하지 못한다는 것을 압니다.

10 그리스도께서 죽으신 것은, 죄에 대하여 단 한 번만 죽으신 것이요, 그가 지금 살아 계시는 것은, 하나님께 대하여 사시는 것입니다.

11 이와 같이 여러분도, 여러분 스스로가 죄에 대하여는 죽은 사람이요, 하나님께 대하여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살아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12 그러므로 죄가 여러분의 죽을 몸을 지배하지 못하게 해서, 여러분이 몸의 정욕에 굴복하는 일이 없도록 하십시오.

13 그러므로 여러분은 여러분의 지체를 죄에 내맡겨서 불의의 2)연장이 되게 하지 마십시오. 오히려 여러분은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아난 사람답게, 여러분을 하나님께 바치고, 여러분의 지체를 의의 2)연장으로 하나님께 바치십시오. 또는 '무기'또는 '무기'

14 여러분은 율법 아래 있지 않고, 은혜 아래 있으므로, 죄가 여러분을 다스릴 수 없을 것입니다.

 

 사랑에는 두려움이 없습니다. 완전한 사랑은 두려움을 내쫓습니다. 여기서 두려움을 세상에서 흔히 생각하는 두려움 혹은 자기 생각의 어떤 막연한 두려움을 떠올리며 말씀을 보시는 것을 주의해야 하겠습니다. 바로 뒤에서 어떤 두려움인지에 대한 설명이 나옵니다. 두려움은 징벌과 관련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즉, 앞의 문맥에서와 같이 여기서의 두려움은 심판 날의 징벌에 대한 두려움인 것입니다.

두려워하는 사람은 아직 사랑을 완성하지 못한 사람이라고 하였습니다. 심판 날의 징벌에 대한 두려움이 여전히 있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을 완성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3.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자기 형제자매도 사랑해야한다는 이 계명을 우리는 주님에게서 받았습니다. (19-21절)

 

 앞에서 성도의 사랑으로 하나님의 사랑이 완성된다고 하였습니다. 이렇게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 이와 같이 서로 사랑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먼저 사랑 하셨기 때문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누가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자기 형제자매를 미워하면, 그는 거짓말쟁이라고 하였습니다. 왜냐하면 보이는 자기 형제자매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자기 형제자매도 사랑해야한다고 하였습니다. 이 계명은 주님께서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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