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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x-mas 기념 연합(그루터기, 대안보, 수원평강, 염광 교회)집회


장소- 수원평강 교회당

일시- 1995년 12월 25일(월)



(성경) 골2장, 갈4:1-11

(주제) 하나님의 나라의 성격과 그 나라 백성들의 올바른 성경 관



  오늘 여러분들을 이렇게 만나 뵙게 돼서 참으로 반갑고 기쁜 마음입니다. 오늘 제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일을 맡게 되었는데 이것은 우선 우리의 상황이 이번에는 어쩔 수 없어서 이 일을 맡게 된 것이지 제가 무슨 우리 전도사님이나 목사님보다 더 낳은 것이 있어서 오늘 이렇게 앞에 서게 되었다고는 생각 하지 않습니다. 

 이점을 여러분들께서 십분 이해해 주시고 오늘 저의 강설을 들어 주십시오.


 오늘은 12월 25일로서 주님께서 사람의 몸을 입고 땅에 오신 날을 기념하는데 그 참 뜻이 있는 날입니다. 

*記念(기록할 기. 생각할 념)=뜻 깊은 일이나 훌륭한 인물 등을 오래도록 잊지 아니하고 마음에 간직함.

  그래서 본래 저는 오늘 전할 말씀을 준비하면서 ‘그리스도께서 오신 목적과 예수를 믿는다는 것 그리고 그 증거는?’ 이라는 주제를 잡고 말씀을 준비 하려 했으나,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가 깨달아 가는데도 다 차서가 있는 것인데 아무리 생각해도, 그 사실들을 이해하는 데는 그에 앞서서 다른 말씀들이 어느 정도 앞서 들어가 있어야 하는 많은 문제들이 있기 때문에 오늘은 현재 한국 교회의 전반적인 상황이나 또 지금 이 자리에 모인 각 지 교회들의 제가 아는 한의 상황을 고려해서 결국 오늘 여러분들께 전하고자 하는 내용을 ‘하나님의 나라의 성격과 그 나라 백성들의 올바른 성경관’ 이라는 주제 하에 몇 가지를 대략적으로 말씀드리기로 하였습니다. 자세한 내용들은 오후에 토론과 또 각 지 교회에 돌아 가셔서 본 교회 교역자에게 상세히 배우시도록 하시고 오늘 저는 나름대로 기도하는 가운데 몇 가지 꼭 제가 이 시간을 통하여 드려야 할 내용을 말씀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어떻게 보면 상당히 방대하고 방만한 내용들도 있겠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부분들은 오후에 토론과 각 지교회의 교역자들께서 잘 보충하여 주실 것으로 생각합니다. 

  오늘 주제가 ‘하나님의 나라의 성격과 그 나라 백성들의 올바른 성경 관’이라고 해서 예수님에 관한 내용이 빠지느냐 하면 그럴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결국, ‘모든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내용’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이 날 자체를 크게 여기어 생각하면 반드시 적어도 제목을 ‘그리스도께서 오신 목적’ 이라 해서 그 사실을 집중적으로 전해야 하겠지만, 우선 저는 이 날 자체를 크게 생각하지 아니하며, 오히려 이 날에 나신 ‘예수 그리스도’를 크게 여깁니다. 그리고 이 날 자체도 정확히 이 날 곧 12월 25일이 예수님께서 탄생하신 날이라고 아무도 장담할 수 없는 불확실한 날입니다. 이 날이 서령, 예수님께서 탄생하신 정확한 날짜라 할지라도, 이 날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 날에 탄생하신 그 예수님이 중요하고, 그 예수님을 똑바로 알아서 그에 합당한 정신과 태도로 그 예수님을 기념하는 것이 중요한 일인 것이지, 그렇지 않고 주님보다 이 날 자체를 더 크게 여기는 것은 흉악한 우상숭배에 불과한 것입니다. 이것은 마치 하나님께서 구약 경륜 하에 내려주신 안식일을 그 안식일의 주인이신 예수 그리스도보다 더 중히 여겨서 그 날을 위해 그 날에 진정한 주인이신 그리스도를 핍박하던 유대 주의자들이나 꼭 같은 것입니다(마12:1-8).

  일반 성도들의 생일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생일날 그 자체는 중요시 여기지만, 그 날에 하나님께서 자신을 탄생 시키시사 이 땅에 존재하게 하신 그 참뜻을 기리고 기념하는 일은 무시되어 진다면  -그리고는 그 날 무슨 맛있는 것을 먹는다든지 단순히 누군가에게 선물을 받는다는 것으로 멈춘다면 -  그러한 사람의 생일은 백번을 맞이하고 또 그만큼 장수를 한다 하여도 그는 하나님께서 그를 이 땅에 보내신 그 참뜻과 목적에 합당한 삶을 살아가는 것 하고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별로 쓸모없는 무가치한 인생이 될 수가 얼마든지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어느 날이 되었든 그 날에 탄생한 그 사람의 존재와 그 사람의 존재의 의의가 중요한 것이지, 그 사람이 탄생한 그 날 자체가 중요한 것은 아닌 것입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예수님의 탄생일 자체가 그렇게 중요했다면, 그 날과 시를 정확하게 성경에 기록해 주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하시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하나님께서는 그가 즉,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이신지, 그리고 그는 무슨 이유와 목적으로 이 땅에 사람의 몸을 입고 오셨는지를 계시해 주시는 일에 집중하셨습니다. 따라서 이 12월 25일 이라는 날짜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와 그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시어서 그가 행하신 일들의 그 이유와 목적을 기념하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이 사실이 빠져버린 그 어떠한 화려함이나 웅장함이나 요란함도 주님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그 주님을 욕 되게 하는 작태가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와 그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시어서 그가 행하신 일들의 그 이유와 목적을 기념하는 일들은 꼭 12월 25일에만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매일의 삶 속에서 언제나 항상 해야 할 일인 것입니다. 

*作態(지을 작. 모양 태)=①태도를 부림. 몸매를 냄. ②하는 짓거리.

  해마다 12월 25일을 전후해서 세계적으로 교회 안 밖으로 한바탕 대 소동이 일어납니다. 거리마다 에서는 소위 캐럴송(Carol song:기쁨의 노래)이 울리고 각 메스컴들과 방송사들은 여러 가지 수많은 행사들로 분주하게 움직이고, 이에 뒤질 새라 각 교회, 교회마다에서는 소위 성극이다 선물 교환이다 성가의 밤이다 해 가지고 굉장히 다채로운 행사들로 분주하게 움직이고, 교회당 안 밖으로는 추리로 장식하여 가능한 한 그 화려하고 웅장함을 보이려는 듯 오색찬란하게 꾸며 놓습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주의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우리가 이러한 것들만을 놓고 나쁘다, 좋다 라고 논하기 이전에 우리가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것이 우선 먼저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이냐 하면, 과연 우리 주님께서 오신 이 날이 도대체 무슨 날이냐 하는 것입니다. 이 말은 다시 말하면, 과연 우리 예수님은 어떤 분이시고, 그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그 이유와 목적이 무엇이냐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 예수님과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그 이유와 그 목적을 모르고는 이 날을 바로 이해하고 이 날을 바로 쓸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 사실이 없이, 즉 예수님께서는 어떤 분이시고, 그 분은 과연 이 땅에 어떤 목적을 가지시고, 무엇 하시려고 오셨는지를 모른 체, 이 날 자체로 무슨 의미가 있거나, 다시 말하면 이 날이 되면, 하늘에서 무슨 복주머니가 막- 쏟아지거나, 괜히 사람들의 마음을 하나님께서 기쁘고 즐겁게 하시고, 이 날이 되면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주시는 그 참 평안이 저절로 모든 사람들에게 내려지도록 하시고, 또 모든 사람들의 마음이 이 날이 되면 왠지 괜히 기분을 좋게 하시는 날이냐? 하면, 전혀 그렇지 않다 하는 것입니다. 이 날 자체는 다른 평소의 날이나 아무런 차이가 없는 날인 것입니다. 사람들이 자기들 스스로가 이 날 자체에 무슨 신비스러움이 있고,  -괜히 그 참된 의미도 모른 체-  이 날은 기분 좋은 날이라고 그렇게 생각하고, 또 그런 사람들이 행하는 분위기를 따라서 행하고 해서, 누구라도 그들과 같이 그런 기분 안으로 들어가면, 그도 괜히 성탄일이 되면 이 날이 즐겁고, 기쁘고, 기분이 좋을 수가 얼마든지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아들이시요, 아들 하나님이신 예수님을 바로 알지도 못하고 또 그 예수님께서 왜? 무엇하시려고  -그 하늘보다 높이 계시고, 거룩 거룩하셔서 죄와는 전혀 상관이 없으신 분이-  이 더럽고 추악한 사람의 세상에, 사람의 몸을 입고 하감 하셨는지를 알지 못하는 자들에게도 무조건 모든 사람들의 마음에 예수님 안에서 성신 안에서 주시는 그 참 평안과 기쁨과 즐거움을 주시는 분이시냐 할 때 전혀 그렇지 아니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면 그들의 그 기쁨과 즐거움과 기분은 어디서 온 것일까요? 진정한 의미에서 예수님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사람들의 그 기쁨과 즐거움과 기분은 어디서 온 것일까? 

  요14:27에 보면 우리 주님께서는  ‘당신이 주시는 평안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 하니라’ 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또 사도 바울도 롬14:17에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 그랬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의(義)와 평강(平剛)과 희락(喜樂)이라 할 때에도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 안에서 주시는 의(義)와 평강(平剛)과 희락(喜樂)과 세상에서 주는 즉, 세상이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 밖에서 주는 의(義)와 평강(平剛)과 희락(喜樂)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물론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 밖에서도 즉, 세상에서도 세상이 주는 소위 의(義)와 평강(平剛)과 희락(喜樂)이라는 것이 있는 것입니다. - 희락(喜樂)이라 하면 기쁘고 즐거운 것이라는 말이지요? -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 밖에서도 의(義)와 평강(平剛)과 희락(喜樂)이라는 것이 있는 것입니다. 우리 주님께서도 요14:27에서 이것을 인정 하셨습니다.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에서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 이 말씀은 주님께서 결코 ‘세상에는 평안이라는 것이 없다’그렇게 말씀하신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우리 주님께서는 ‘세상에도 세상이 주는 평안이 있다’고 말씀 하신 것입니다. 다만 세상이 주는 평안과 당신께서 주시는 평안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사실을 명확히 말씀 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람들이 세상에서 -여기서 세상이란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 밖의 영역(領域:범위, 세계)을 말하는 것입니다. - 그러므로 세상에서도 세상이 주는 소위 의(義)와 평강(平剛)과 희락(喜樂) 이라는 것이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사람들이 세상에서 얻은 의롭고 평화롭고 기쁘고 즐거운 것 하고,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와 성신 안에서 주시는 의(義)와 평강(平剛)과 희락(喜樂) 하고는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심지어 성경에 보면 ‘악인의 형통’이나 ‘죄인의 형통’이라는 것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시73:

3. 잠23:17. 렘12:1,2) 그러나 “....악인이 형통한 것이 다 죄니라”(잠21:4)라고 했고, “네 마음으로 죄인의 형통을 부러워하지 말고 항상 여호와를 경외하라 정녕히 네 장래가 있겠고 네 소망이 끊어지지 아니하리라”(잠23:17,18)하였습니다. 

  또 성경에 보면, ‘하나님의 의(義)도 모르고 힘써 하나님의 의(義)를 복종치 아니하면서도 하나님께 열심히 있는 사람의 의(義)’ 라는 것이 있습니다.(참고, 롬10:2,3) 이러한 사실을 안다면 사람들이 의(義)롭고 평화(平和)롭고 기쁘고 즐거우면 무조건 하나님께서도 그렇게 여기시는 것처럼 그렇게 생각 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진리는 사람에 의해 좌우되거나, 사람이 그 수가 얼마나 많은 수이냐 아니냐 하는 것에 의해서 좌,우 되는 것이 전혀 아닌 것입니다. 사람들은 세상에서 어떤 것을 결정 하거나 자기 인생의 길을 결정할 때 대부분 대중에 의해서 결정을 하며 살아갑니다. 그러나 오히려 우리 주님께서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음이니라” (마7:13-14) 이렇게 말씀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 안에서 주시는 그 의(義)와 평강(平剛)과 희락(喜樂)을 우리에게 주실 때에도 사람들이 어떻게, 그리고 그 수가 얼마나 많은 수이냐 적은 수이냐 와는 전혀 상관없이 오직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 안에서만 주시기로 그렇게 정하셨기 때문에 이외에 다른 분별의 Criterion<크라이티리언:判斷基準(판단기준)>은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 나라의 의(義)와 평강(平剛)과 희락(喜樂)을 분별할 때 무조건 의(義)와 평강(平剛)과 희락(喜樂)이냐 아니냐 하는 것으로 분별하는 것이 아니라, 과연 그것이 의(義)와 평강(平剛)과 희락(喜樂)인 것만은 분명 할지라도 그것이 다가 아니라 과연 그것이 누가 주신 것이냐? 하는 것에 의하여 그것이 주님께서 내시는 하나님나라의 열매이냐, 아니면 세상이 주는 것이냐가 결정되는 것입니다. 

  살전5:3에 보면 세상 나라의 가장 타락의 상황을 즉 그리스도에게서 가장 먼 극한 타락의 현상을 표시할 때 사람들이 ‘평안하다 안전하다 할 때’ 라고 표시하기도 했습니다. 

  또 예수님께서 눅17:26, 마24:37-39에 보면 당신께서 다시 재림하시어 최후의 심판 때에 대하여 말씀하시면서 “노아의 때와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 홍수전에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고 있으면서 홍수가 나서 저희를 다 멸하기까지 깨닫지 못하였으니 인자의 임함도 이와 같으리라”(마24:37-39)

  또 눅17:28-30에 보면, “또 롯의 때와 같으리니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사고, 팔고, 심고, 집을 짓더니 롯이 소돔에서 나가던 날에 하늘로서 불과 유황이 비 오듯 하여 저희를 멸하였느니라. 인자의 나타나는 날에도 이러하리라” 여기서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고 사고, 팔고, 심고, 집을 짓 는다’는 말은 이러한 일들 자체가 나쁘다는 말이 아니라, 당시 그 사회의 특성이 그렇게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고 사고, 팔고, 심고, 집을 짓는 것’들 외에는 하나님을 두려워하여 하나님의 경고나 교훈하심을 마음에 새겨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일이나 하나님을 사랑하는 그러한 거룩한 일을 찾아 볼 수 없을 만큼 엉뚱한데 정신과 마음이 빼앗겨서, 마치 그 사회의 모습을 보면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고 사고, 팔고, 심고, 집을 짓는 일’과 같은 그런 것들을 위해서 사람이 존재하는 것 같이 착각할 만큼 당시의 사회적 모습이 그랬다는 것에 대한 묘사인 것입니다. 따라서 이는 동시에 그들의 사회가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고 사고, 팔고, 심고, 집을 짓는 일’에 재미를 느낄 만큼 모든 것이 풍요롭고 여유가 있는 사회였고, 사람들이 ‘평안하다 안전하다’라고 할 만큼 세상을 사랑하던 사회였다는 사실을 암시하고 있기도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의 그러한 평안과 안전은 자신들의 멸망을 자초할 뿐 자신들을 하나남의 그 무서운 심판에서 전혀 구원의 힘이 되지를 못했던 것입니다. 

  잠14:12,13에는 “어떤 길은 사람의 보기에 바르나 필경은 사망의 길이니라. 웃을 때에도 마음에 슬픔이 있고 즐거움의 끝에도 근심이 있느니라”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세상 사람들은 자꾸 즐겁고 웃기만 하면 복이 온다고 하면서 좌,우간 어떤 거짓이나 혹은 어떤 패역하고 패덕한 짓을 해서라도 사람을 웃기거나 즐겁게만 하면 그런 사람을 대중의 스타로 만들고 또 그런 짓을 하는 자신도 무슨 자기가 사회에 큰 공헌이나 하는 것처럼 부끄럽고 저질스러우며 수치스러움을 무슨 큰일이나 하는 냥,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일들이 있지마는 그것은 세상 나라에서나 있는 일이고, 우리 그리스도 안에서 새 생명을 힘입고 사는 거룩한 성도들은 슬픔이 웃음보다 나은 경우가 얼마든지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전7:3-6에는 “슬픔이 웃음보다 나음은 얼굴에 근심함으로 마음이 좋게 됨이니라. 지혜자의 마음은 초상집에 있으되 우매자의 마음은 연락하는 집에 있느니라. 사람이 지혜자의 책망을 듣는 것이 우매자의 노래를 듣는 것보다 나으니라. 우매자의 웃음소리는 솥 밑에서 가시나무의 타는 소리 같으니 이것도 헛되니라” 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그런가하면 전2:1-10. 약4:1-10(9,10)을 보십시오.


  자! 여러분은 지금까지 드린 말씀가운데서 무엇을 느끼셨습니까? 무엇보다도 사람의 생각과 하나님의 생각이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것을 느끼셨을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과 그의 말씀인 진리는 대중이나 사람의 힘에 의하여 전혀 좌,우 되는 일이 없음을 깨달으셨을 것입니다. 

  여러분 근본적이고 원칙적으로 아담 안에서 사람이 타락한 이래로 하나님의 생각과 사람의 생각이 전혀 다르다는 것을 기억 하십시오!(참고. 갈1:10,롬8:5-8)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의 속성 가운데 가장 먼저 생각해야 하며 가장 대표적인 속성은  ‘거룩 성’ 즉 ‘구별 성’입니다. 이 말을 ‘성도’ 즉 ‘거룩한 무리들’이라든지 ‘성전’ 곧 ‘거룩한 집’이라고 성경에서 쓸 때에는 덮어놓고 단순히 다른 사람이나 다른 집과 구별 되다는 의미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서 구별 되었다’ 혹은 ‘예수 그리스도에게 속했다’는 뜻으로 쓰인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라 할 때에는 광의적인 의미에서는 두 가지로 나누어 생각할 수 있는 것인데, 하나는 ‘권능의 왕국’(Regnum potentiae)으로서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은혜 밖의 하나님의 통치 영역’이요. 또 하나는 ‘은혜의 왕국’(Regnum gratiae)이라 해서 이는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은혜 안에서의 통치의 영역’인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보통 ‘하나님의 나라’ 혹은 ‘천국’ 이렇게 말 할 때에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은혜 안에서의 통치 영역’즉 ‘은혜의 왕국’(Regnum gratiae)을 지칭하는 것입니다. 이 나라는 특별히 하나님께서 통치하시는 모든 영역 가운데서 ‘특별히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은혜를 입혀 주셔서 다스리시는 거룩한 나라’입니다. 그러므로 사람 중에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사람은 첫째, 하나님의 선택하심을 입은 자이어야 하며 둘째는, 성신으로 거듭난 자이어야 하며 셋째는, 예수 그리스도를 바로 알고 깨달아서 그를 자기의 구주요 그리스도로 영접한 자이어야 만이 들어가는 참으로 거룩한 나라입니다. 그러므로 이 하나님의 나라는 거룩한 즉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특별히 구별된 나라이며, 이 나라에 관한 모든 일은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은혜를 떠나서는 알 수도 이해 될 수도 없는 성격의 일 들입니다. 심지어 ‘의(義)와 평강(平剛)과 희락(喜樂)’이라는 것까지도 세상에서 세상이 주는 것과 우리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것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사실까지도 우리는 지금 확인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성경을 볼 때에는 성경을 전체적이고 종합적이며 총체적인 안목에서 보고, 해석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 성경에 있다고 해서 성경의 어느 부분을 그대로 암기하듯 외워서 무엇을 주장하는 것으로 언제나 옳고 바르다고 생각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가령, 구약성경 레위기 1장 말씀만 보더라도 (참고, 레1장)

  그 말씀대로라면 우리는 지금 어떻게 해야 할까요? 회막을 짓고, 또 그 회막에서 여호와 하나님께서 회막에서 모세를 부르시듯 우리를 부르셔야하고, 오늘 우리와 같이 예배를 드리는 것은 지금 다 소용없는 일이며, 여호와 앞에 열납 되는 예배를 드리려면 레위기서 1장에 있는 말씀대로 생축 중에서 소나 양으로 예물을 선택하여 거기 레위기 서에 기록된 대로 각을 뜨고, 그 내장과 정갱이는 물로 씻어서 그 전부를 단 위에 불살라 번제를 드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우리가 ‘성경대로’ 혹은 ‘말씀대로’ 라고 할 때 과연 이런 의미인 것인가요? 전혀 그렇지 않지요? 전혀 그러한 의미가 아니지요? 여러분께서 다 아시는 대로 전혀 오늘날 신약시대에는 ‘아! 그렇다 과연 우리는 성경대로 성경에 쓰여 있는 글자 그대로 앞서 레위기 1장의 예를 들어 말씀 드린 대로 그렇게 성경대로 하자!’ 그렇게 하지 않지요? 만약 그런 사람이나 그런 단체가 있다면 그들을 우리는 ‘이단’이라고 합니다. 그러면 왜 우리는 그런 사람들을 ‘이단’이라고 합니까? 단순히 우리와 다르기 때문에 우리가 그들을 ‘이단’이라고 하는 것인가요? 아니면 지금 우리의 형편이 도저히 그렇게 할 수가 없고, 또 지금 시대는 모세가 살던 당시처럼 농경사회나 목축업을 하는 사회가 아닌 시대에 살고 있는데 비하여, 그런 사람들은 구시대적인 주장을 하기 때문에 그러한 의미에서 우리는 모세시대처럼 하나님께 제사 드리는 것을 반대하며, 그런 사람들을 ‘이단’이라고 하는 것입니까? 여러분들은 어떻게 생각 하십니까? 

  오늘 그래도 여기에 오신 사람들은 적어도 이 ‘구, 신약 66권을 정확 무오한 하나님의 말씀’임을 믿고, 그리고 ‘오직 하나님의 말씀대로’ ‘오직 하나님의 말씀대로’ 하면서 오직 그야말로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시려고 하시는 분들인 줄고 생각 하는데, 한번 말씀해 보시지요. 

  만약, 오늘날도 하나님께서 레위기 서에 기록해 주신 문자 그대로 하나님께 예물을 드리라고 하셨다면, 오늘 우리는 어떤 어려움과 번거로움에도 불구하고 별도로 짐승을 기르든지 아니면 돈을 주고 사서라도 그렇게 하나님께서 지시하신 대로 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회막도 짓던지 아니면, 그 회막이 있는 곳을 아무리 그곳이 멀고 험해도 우리는 그곳을 반드시 찾아 가야 할 것입니다. 그곳이 아무리 먼 외국이라 할지라도, 우리는 그렇게 하는 것이 올바르고 당연하며, 그렇게 할 때만이 진정으로 하나님을 믿고 섬기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사람인 것입니다. 

  그러나 이와 반대로 하나님께서 오늘날에는 우리를 그렇게 모세시대처럼 그런 방식으로 우리를 만나주시지 않으신 다거나, 혹은 오늘날은 그렇게 하나님께 예배하는 자는 ‘이단’이라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다면, 이 또한 오늘날에는 하나님께 그렇게 모세 시대처럼 그런 방식으로 예배하지 아니하고 하나님께서 달리 지시하신대로 하나님께 예배하는 사람이 진정으로 하나님께 예배하고 진정으로 하나님을 만나며 진정으로 하나님을 믿고 섬기는 그야말로 ‘하나님의 말씀대로’ ‘성경대로’ 사는 사람일 것입니다. 

  물론, 하나님께서 오늘날은 구약시대와는 달리 지시 하셨다면 우리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그렇게 하실만한 정당한 이유와 그 목적을 우리가 충분히 깨닫고 이해 할 만큼 성경에 다 가르쳐 주셨을 것이고, 따라서 우리는 그 하나님의 참 뜻을 성신께서 쓰시는 기록된 성경과 성경 교사들을 통하여 열심히 배우고 익혀야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래야 오늘날에 있어서는 그가 하나님께서 열납 하시는 예배를 드리는 사람이 되 수 있기 때문입니다. 뿐만 아니라 , 오늘 날에는 그런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진정한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살아계신 하나님을 만나며 그의 음성을 듣고 그의 인도하심을 받으며 사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신약시대에는 어떻게 예배하는 자를 하나님께서 찾으시므로 어떻게 예배해야 할 것을 우리 주님께서 가르쳐 주셨습니까? 다 같이 요4:23,24을 보시지요.

  그러므로 하나님의 교회에서 함부로 아무나 성경을 사사로이 풀 것이 아닙니다.(벧후1:20,21)

  오늘날의 성경 해석은 성경의 역사적인 성격을 따라 유기적 통일성 뿐만 아니라, 점진적인 발전성을 따라 성경 66권의 전체적인 성격과 안목으로 해석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교회의 거룩성과 보호를 위하여 오늘날 전문적인 신학 기관을 세워서 특별히 교육을 받게 하고, 그래서 그러한 전문적인 교육을 정상적으로 이수하게 해서 그러한 과정을 밟아온 사람을 교회의 목사로 혹은 성경교사로 세워 가는 것입니다. 물론, 목사나 성경교사는 자기의 행정적인 위치와 그 권위만을 주장하고 내세우는 것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목사와 성경 교사의 자격은 무엇보다도 성경을 자신이 올바르고 풍성하게 깨달아서 교회를 거룩하고 하나님의 과연 교회답게 하나님께서 이루어 가시고자 하시고 하나님께서 인도 하시는 대로 하나님께 오직 순종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 자기 마음대로 자기의 목적과 자기의 이상을 세우고 그것을 위하여 헛된 수고를 하는 것은 참으로 불행한 일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이 섬기는 교회가 진정으로 하나님께서 세우시는 진정 하나님의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러려면 먼저 어떻게 해야 될까요?  먼저 교회를 이루고 섬기는 사람들이 날이 갈수록 하나님의 말씀을 바르고 풍성하게 자꾸 깨달아가야 합니다. 교회는 날이 갈수록 하나님의 말씀을 바르고 풍성하게 깨달아 가는 이 일보다 더 귀하고 더 급한 일은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를 이루어 가시는데 있어서 반드시 쓰시는 방도가 있으시기 때문입니다. 그 아버지 하나님께서 쓰시는 방도는 무조건 하나님의 말씀이면 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말씀 곧, 하나님의 아들에 관한 이야기인 복음을 깨닫게 하시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모든 그 방대한 말씀들이 어떻게 예수 그리스도와 관계가 있는가 하는 것을 깨닫게 하시는 방식으로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들에게 예수를 주요 그리스도로 믿게 하시고<롬1:1,2. 10:17. 골2:1-23

(16.17). 갈4:1-11(10,11)>, 하나님의 모든 그 방대한 말씀들이 어떻게 예수 그리스도와 관계가 있는가 하는 것을 깨닫게 하시는 방식으로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들을 교회로 부르셔서 당신의 지체로 삼으시고 당신의 몸으로 삼으셔서 그들을 쓰시사, 아버지 하나님의 남은 일을 계속해서 이 역사의 현실에서 실현하시며, 구현 하시고 증시 해 가시는 것입니다(행1:8. 2:36. 롬10:13-17. 골1:

24. 2:2,3,6,7).



 이만큼만 하시지요.



<토의를 위한 질문>


1. 성탄일과 그 진정한 의미는?

2. 성도들의 생일에 생각해야 할 것은?

3. 성도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언제 어떻게 기념해야 하는가?

4. 하나님 나라의 성격?

5. 하나님 나라 백성들의 올바른 성경관은?

6. 진정한 의미에서의 하나님의 말씀이란?

7. 하나님의 대표적인 속성과 그와 관련하여 성도, 성전, 기도, 믿음 등에 대하여 바른 인식과 그릇     된 인식에 대하여 말 해 봅시다. 

8. 하나님의 교회는 누가 어떤 방도로 세워 가시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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